
‘딥스테이트’ 청산과 공무원 대거 교체: 관료제의 해체와 ‘충성심’의 시대
“선거로 뽑히지 않은 관료들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들은 내 정책을 방해할 권한이 없다. 이제 짐을 싸라.”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 주에 연방 공무원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바로 ‘스케줄 F(Schedule F)’의 부활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1기 임기 말에 시도했다가 무산되었던 계획으로, 신분 보장을 받는 일반직 공무원들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정무직으로 재분류하는 조치였습니다.
지난 1년, 워싱턴 D.C.의 관가(官街)는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수십 년간 미국 행정 시스템을 지탱해 온 ‘직업 공무원 제도(Civil Service System)’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충성심으로 무장한 새로운 인물들이 채우는 거대한 물갈이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른바 ‘딥스테이트(Deep State·숨은 권력 집단) 청산’ 작전의 1년 기록을 심층 분석합니다.
1. ‘스케줄 F’의 칼날: 신분 보장의 빗장을 풀다
트럼프 2기 행정 개혁의 핵심 도구는 단연 ‘스케줄 F’였습니다. 이 행정명령은 정책 입안이나 자문에 관여하는 공무원들을 ‘스케줄 F’라는 새로운 직군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직군에 속하면 일반적인 공무원이 누리는 해고 방지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과거 정권이 바뀌어도 실무를 담당하는 국장급 이하 관료들은 유지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인사관리처(OPM)는 전체 연방 공무원 중 약 5만 명 이상의 자리가 스케줄 F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실제로 국무부, 법무부, 환경보호청(EPA) 등 트럼프 대통령이 ‘적폐’로 지목한 부서의 핵심 보직 국·과장들이 줄줄이 해고 통보를 받거나, 한직으로 밀려나 사표를 던졌습니다.
2. 전문가의 퇴장과 ‘충성파’의 진격
“우리는 물리학 박사보다 트럼프의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백악관 인사팀의 이 비공식적인 모토는 2025년 인사의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던 과학자, 독점 금지법을 집행하던 변호사, 동맹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던 외교관들이 떠난 자리는 **‘마가(MAGA) 충성파’**들로 채워졌습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등이 작성한 ‘인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인물들이 대거 발탁되었습니다. 이들은 행정 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대통령의 지시를 토 달지 않고 수행할 준비가 된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문성이 필수적인 보건, 과학, 정보 분야에서 심각한 ‘두뇌 유출(Brain Drain)’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나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수십 년의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증발했다는 내부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3. 법무부와 FBI의 초토화: “대통령의 로펌을 만들라”
가장 격렬한 숙청이 일어난 곳은 법무부(DOJ)와 연방수사국(FBI)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기소했던 이 기관들을 “정치적으로 편향된 딥스테이트의 본거지”로 규정했습니다.
법무장관은 취임 직후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제한하려는 모든 내부 규정을 폐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특검 수사에 관여했던 검사들은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고, FBI 국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습니다. 그 결과 법무부는 독립적인 법 집행 기관이라기보다, 대통령의 정적을 수사하고 대통령의 정책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대통령의 개인 로펌’**처럼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4. 복지부동(伏地不動)과 행정 마비
살아남은 공무원들은 납작 엎드렸습니다. 회의 석상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곧 ‘딥스테이트’로 낙인찍혀 해고당하는 지름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관료 사회 특유의 영혼 없는 복종을 넘어, 아예 일을 하지 않는 **‘적극적 태업’**이나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보신주의’**가 극에 달했습니다. 중요한 인허가 업무가 이유 없이 지연되거나, 상부의 명확한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행정 마비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었습니다. 특히 환경 규제 완화나 이민 단속 등 논란이 큰 정책일수록, 실무자들은 나중에 법적 책임을 질까 두려워 결재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5. 엽관제(Spoils System)의 부활 논란
민주당과 공무원 노조는 트럼프의 이러한 행보를 19세기 말의 **‘엽관제(Spoils System·선거 승자가 관직을 독식하는 제도)’**로의 회귀라고 비판하며 소송전을 벌였습니다.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현대 행정 국가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확고했습니다. “국민은 선출된 대통령에게 통치 권한을 위임한 것이지, 이름 모를 관료에게 위임한 것이 아니다. 관료가 대통령을 이기려 드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논리로 대대적인 물갈이를 정당화했습니다.
6. 총평: 영혼이 사라진 ‘도구적 관료제’의 탄생
트럼프 2기 1년 임기동안 워싱턴의 공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견제와 균형, 혹은 전문성에 입각한 내부 토론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명령과 복종’**만이 남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료 집단을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이는 완벽한 도구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국경 폐쇄나 규제 철폐 같은 정책들이 전례 없는 속도로 집행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효율성의 이면에는 **‘국가 시스템의 사유화’**와 **‘전문성의 붕괴’**라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충성심만 남고 능력이 사라진 정부가 과연 복잡한 현대 사회의 위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2026년은 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