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무역 전쟁 재발: ‘동맹 없는 난타전’과 세계 경제의 분절화
2018년의 무역 전쟁이 ‘미국 대 중국’의 헤비급 매치였다면, 2025년의 무역 전쟁은 링 위에 올라온 모든 선수가 서로 주먹을 휘두르는 ‘배틀로얄’에 가깝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꺼내 든 ‘보편적 관세(Universal Tariff)’ 카드는 지난 30년간 지탱해 온 자유무역 질서(WTO 체제)의 완전한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지난 1년, 세계 무역 지도는 어떻게 찢겨 나갔으며, 각국은 이 거대한 파도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 심층 분석합니다.
1. 전선의 확대: “적도 친구도 없다, 오직 미국만 있을 뿐”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관은 명확했습니다. “무역 적자는 곧 국가적 손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취임 직후 모든 수입품에 10~2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며, 칼끝을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한국, 일본 등 전통적 우방국들에게도 겨눴습니다.
과거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들과 연대하여 중국을 포위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을 썼다면, 트럼프 2기는 이를 폐기하고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적 고립(America First Isolationism)’**을 택했습니다.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팔고 싶으면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거나, 아니면 세금을 내라는 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메시지가 전 세계에 타전되었습니다.
2. EU의 즉각적인 보복과 대서양 동맹의 균열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유럽연합(EU)이었습니다. 이미 트럼프 1기를 경험하며 ‘학습 효과’를 얻은 EU는 미국의 관세 부과가 발표되자마자 준비해 둔 ‘보복 관세 리스트’를 꺼내 들었습니다.
EU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위스키 등 상징적인 미국 제품뿐만 아니라, 트럼프 지지 기반이 강한 지역(Red States)의 농산물과 공산품에 정밀 타격식 고율 관세를 매겼습니다. 더 나아가 EU는 자체적인 **‘경제적 강압 방지 도구(ACI)’**를 발동하고, 미국산 제품에 대한 탄소국경세(CBAM) 적용 기준을 강화하며 비관세 장벽까지 높였습니다.
이로 인해 대서양 무역 동맹은 사실상 와해되었습니다. 독일의 자동차 산업과 프랑스의 명품 산업이 타격을 입었지만, 그만큼 미국 수출 기업들도 유럽 시장을 잃었습니다. 나토(NATO) 방위비 문제와 맞물려, 무역 갈등은 안보 협력까지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했습니다.
3. USMCA의 위기와 북미 공급망의 혼란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으로 묶여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도 안전지대는 아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를 **“중국산 제품의 뒷문(Backdoor)”**이라고 비난하며, 멕시코에서 생산된 중국 브랜드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는 북미 자동차 공급망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멕시코에 진출했던 미국 완성차 업체들까지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었고, 2026년 예정된 USMCA 재협상(Review)을 앞두고 협정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북미 경제권 전체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되었습니다. 국경에서의 검문 검색 강화로 물류 대란이 일상화된 것은 덤이었습니다.
4. 중국의 전략적 인내와 ‘급소 찌르기’
미국의 대중국 관세 60% 부과에 대해 중국은 의외로 차분하지만 치명적인 대응을 택했습니다. 1기 때처럼 미국산 콩(대두) 수입을 중단하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독점적 지위를 가진 희토류, 갈륨, 게르마늄 등 첨단 산업 필수 광물의 대미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방위 산업과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또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미국이 배제된 독자적인 경제 블록을 구축하는 데 속도를 냈습니다. 위안화 결제망을 확대하고, 브릭스(BRICS)를 중심으로 한 반미 경제 연대가 가속화되었습니다.
5. 샌드위치 신세가 된 동맹국 (한국, 일본, 대만)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미국은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 축소를 시사하며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는 동시에, 대중국 수출 통제 수위를 최고조로 높일 것을 강요했습니다.
삼성전자와 TSMC 등은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하는 손실과, 미국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특히 대미 무역 흑자가 컸던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불균형 시정’ 요구에 직면하여 에너지 구매 확대와 미국산 무기 추가 도입 등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 대응을 해야 했습니다.
6. 총평: 효율성의 종말과 ‘블록 경제’의 도래
2025년의 글로벌 무역 전쟁은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을 **‘효율성(Efficiency)’에서 ‘안보와 주권(Security & Sovereignty)’**으로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제 기업들은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는 곳을 찾아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 둔화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1년 차,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에서 **‘미국 블록’, ‘중국 블록’,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비동맹 블록’**으로 쪼개졌습니다. WTO의 기능은 정지되었고,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이 무역 현장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난타전이 2026년에는 타협점을 찾을지, 아니면 1930년대 식의 대공황을 초래할 보호무역의 늪으로 빠져들지, 세계는 위태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