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력 부족 심화: ‘미국 우선주의’의 역설과 텅 빈 일터
"일자리는 돌아왔는데, 일할 사람이 사라졌다."
2025년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가장 아이러니한 문장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임금을 낮춘다"고 주장하며 국경 봉쇄와 대규모 추방을 약속했습니다.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국경은 닫혔고, 수십만 명의 불법 체류 노동자가 미국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미국 경제는 ‘실업난’이 아닌 사상 최악의 **‘구인난(Labor Shortage)’**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식당, 건설 현장, 농장, 그리고 공장까지 ‘사람을 구합니다(Help Wanted)’라는 표지판이 걸리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트럼프의 이민 정책이 불러온 노동 공급 쇼크(Supply Shock)와 그 경제적 파장을 정밀 진단합니다.
1. ‘그림자 노동력’의 증발과 공급 절벽
미국 경제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던 수백만 명의 저숙련 이민자 노동력, 이른바 **‘그림자 노동력(Shadow Workforce)’**이 증발했습니다. ‘오로라 작전’으로 대변되는 강력한 추방 정책과 고용주에 대한 처벌 강화(E-Verify 의무화)는 이민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잡혀가지 않은 이들도 지하로 숨어들거나 스스로 멕시코나 캐나다로 떠나는 ‘자진 출국’을 택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담당하던 일자리가 대부분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Dirty, Difficult, Dangerous)’이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금이 오르면 미국인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이미 고학력·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된 미국 노동 시장 구조에서, 뙤약볕 아래서 딸기를 따거나 도축장에서 고기를 써는 일로 돌아가려는 미국 청년은 거의 없었습니다.
2. 농업의 비명: 밭에서 썩어가는 작물들
가장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곳은 농업, 특히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의 과일·채소 농장들이었습니다. 수확철인 가을,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에서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잘 익은 토마토와 포도를 그대로 밭에서 썩히는 농가들이 속출했습니다.
전미농업인연합회(AFBF)는 "수확 인력의 70% 이상이 사라졌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는 곧바로 식탁 물가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선 식품 가격이 전년 대비 20% 이상 폭등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했던 ‘물가 안정’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농장주들은 로봇 수확기 도입을 서둘렀지만, 당장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3. 건설 현장의 셧다운과 주택 위기 심화
주택 시장과 인프라 건설 현장도 멈춰 섰습니다. 텍사스와 애리조나 등 남부 주의 건설 현장은 히스패닉 노동자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들이 사라지자 공사 기간은 두 배, 세 배로 늘어났습니다.
"집을 지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집값을 잡나?" 건설 비용 상승과 공기 지연은 신규 주택 공급 부족을 야기했고, 이는 이미 높은 금리로 고통받는 주택 시장에 ‘공급 부족’이라는 또 다른 악재를 더했습니다. 바이든 정부 때 시작된 반도체 공장이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도 숙련된 용접공과 배관공을 구하지 못해 완공 시점이 2026년 이후로 줄줄이 연기되었습니다.
4. 서비스업의 붕괴와 ‘팁플레이션’의 악순환
외식업과 숙박업 등 서비스 산업에서는 ‘영업 시간 단축’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었습니다. 직원을 구하지 못한 식당들은 점심 영업을 포기하거나 주 4일만 문을 여는 고육지책을 택했습니다.
호텔에서는 매일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 되었고, 패스트푸드점은 키오스크와 로봇 팔로 인간을 대체하는 속도를 높였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시간당 임금을 25~30달러까지 올리는 업체들이 늘어났지만, 이는 메뉴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임금-물가 악순환(Wage-Price Spiral)’**을 초래했습니다.
5. 제조업 리쇼어링의 발목을 잡다
트럼프 2기 경제 정책의 핵심인 ‘제조업 부활(Reshoring)’도 노동력 부족이라는 암초를 만났습니다. 관세 장벽을 피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려던 기업들이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공장을 돌릴 블루칼라 노동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하고 있고, 젊은 세대는 대학 진학률이 높아 공장 노동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 구조적인 인구통계학적 위기(Demographic Crisis)를 이민자로 메워오던 시스템이 붕괴하자, 제조업체들은 미국 투자를 재검토하거나 자동화 설비 투자 비용 때문에 수익성을 갉아먹는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6. 총평: ‘순혈주의’가 청구한 경제적 비용
2025년의 노동력 대란은 **“정치적 구호가 경제적 현실을 무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경을 닫아 안보를 강화하고 불법을 바로잡았다는 정치적 승리를 거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은 정부에 묻고 있습니다. "이민자 없이 미국 경제가 3%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가?" 2026년에는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한 기업들의 AI 및 로봇 도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저숙련 노동 시장의 영구적인 소멸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트럼프의 이민 정책은 역설적으로 인간 노동자를 가장 빠르게 대체하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