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준(Fed)과의 전쟁: 독립성의 붕괴와 '금리의 정치화'
트럼프 2기 1년 차 통화 정책 및 금융 시장 분석
"연준은 너무 느리다. 그들은 경제를 죽이고 있다. 나에게는 그들을 해임할 권한이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백악관 브리핑룸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 미디어(Truth Social)를 가장 뜨겁게 달군 주제는 다름 아닌 **'연방준비제도(Fed) 때리기'**였습니다. 대통령이 중앙은행의 정책에 불만을 표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트럼프 2기 1년 차에 벌어진 갈등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선 '전쟁'에 가까웠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금기(Taboo)가 깨진 2025년. 백악관과 에클스 빌딩(연준 본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미국 경제와 글로벌 금융 시장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정밀 진단합니다.
1. 갈등의 서막: "금리를 내려라" vs "물가가 먼저다"
갈등의 근본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장 지향적 정책과 경제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관세 인상과 감세 정책을 밀어 붙이며 강력한 경기 부양을 원했습니다. 이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낮은 금리'**였습니다. 그는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서는 저금리가 필수"라며 취임 초부터 제롬 파월 의장을 향해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연준의 데이터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적 관세와 이민자 추방 정책이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인플레이션)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2025년 1분기, 물가 지표가 다시 튀어 오르자 연준은 금리 인하는커녕 "금리 인상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매파적(Hawkish)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말폭탄을 넘어선 위협: 해임론과 '그림자 연준'
단순한 말싸움으로 끝날 줄 알았던 갈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의 **'해임 가능성'**을 법률팀에 검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헌정 사상 초유의 제도적 위기로 번졌습니다. 1913년 연준 설립 이래 대통령이 정책 견해 차이를 이유로 의장을 해임한 전례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백악관 주변에서는 파월 의장을 패싱(Passing)하고, 트럼프 충성파 경제 자문그룹의 의견을 공식 통화 정책처럼 홍보하는 이른바 '그림자 연준(Shadow Fed)' 전략이 구사되었습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누가 진짜 미국의 금리를 결정하는가?"라는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도 금리 결정에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준법 개정까지 시사해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3. 시장의 역습: 채권 자경단의 부활과 금리 급등
백악관이 금리 인하를 압박할수록, 시장 금리는 오히려 치솟는 기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귀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여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중앙은행이 신뢰(Credibility)를 잃으면 화폐 가치는 하락하고 물가는 통제 불능이 됩니다. 이 위험에 대한 보상으로 채권 투자자들은 더 높은 이자(수익률)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외칠 때마다 국채 투매 현상이 벌어지며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이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 경제를 옥죄는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금리를 내리라고 소리칠수록 시장 금리는 올라간다"는 **'트럼프의 역설'**이 2025년 금융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4. 파월의 침묵과 고립된 투쟁
제롬 파월 의장은 2025년 내내 "우리는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데이터에 입각해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하며, 공개적인 대응을 자제했습니다. 그러나 연준 내부적으로는 백악관의 개입을 막기 위한 치열한 방어전이 펼쳐졌습니다.
연준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을 결정하거나 기자회견을 통해 중앙은행 독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스크럼'을 짰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 이사회의 공석에 자신의 측근을 지명하려 시도하면서, 연준 내부의 균열 조짐도 감지되었습니다. 월가에서는 "파월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버티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는 자조 섞인 분석이 나왔습니다.
5. 글로벌 금융 시장의 동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통화 정책이 정치화되자, 전 세계 중앙은행들도 혼란에 빠졌습니다. 한국은행,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은 미 연준의 정책 경로를 예측할 수 없게 되자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특히 달러화의 변동성이 극대화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가 너무 강하다"며 인위적인 약달러를 원하다가도, 안전 자산 선호 심리로 달러가 다시 강세를 보이는 등 방향성을 잃은 널뛰기 장세가 이어졌습니다. 이는 신흥국들의 자본 유출 우려를 키우고 환율 방어 비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6. 총평: 신뢰라는 자본의 상실
2025년 트럼프와 연준의 충돌은 **"경제 논리가 정치 논리에 압도당할 때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저금리 환경을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금융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제도적 신뢰'**에 흠집을 냈습니다. 시장은 이제 연준의 발표보다 대통령의 트윗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이는 통화 정책의 효율성을 급격히 떨어뜨렸습니다. 1년 차의 혼란은 예고편일 수 있습니다. 파월 의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6년이 다가오면, 차기 의장 선임을 둘러싸고 '충성심'과 '전문성' 사이의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과연 미 연준은 100년 넘게 지켜온 독립성의 성벽을 수성할 수 있을까요? 2025년은 그 성벽에 굵은 금이 가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